SONY는 소리(sound)의 라틴계 어원인 소너스(sonus)와 작은 아이라는 뜻의’sonny의 두 단어의 결합에서 탄생되었습니다. 이 두 단어의 결합은 ‘무한한 독창력에 대한 열정 및 에너지를 발산하는 매우 작은 모임’이라는 의미로, 소니의 역사는 그 이름에서 시작된다 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말, 이부카 마사루는 도쿄의 니혼바시에 폭탄 피해를 입은 백화점 건물에서 라디오 수리점을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 아키오 모리타라는 동업자가 합류 했고, 그들은 동경 통신 공업 주식회사로 불리는 회사를 설립습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Type-G라고 불리는 테입 레코더를 만들었고 설립 당시의 이름은 도쿄 통신 공업 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会社)였습니다.
1955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하기 이전 이미 일본에서는 테이프레코드의 생산액에 있어서는 일본 총 생산액의 91%를 자랑하고 있는 회사로써 이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는 1957년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초소형 라디오를 개발, 시판하는데 이때 제품 브랜드로 채택한 것이 ‘소니(Sony)’였고, 이후 상품명을 회사명과 일치시키기로 결정합니다.
미래를 위해 10년간 알려온 ‘도쿄통신공업 주식회사’라는 이름대신 ‘소니 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바꾼 것입니다. 설립 당시에는 직원의 수도 20여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는 전자기기, 게임, 엔터테인먼트, 금융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고 음향, 영상 기기, 방송기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HISTORY OF SONY
1946
소니의 역사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엔지니어 마사루 이부카와 물리학을 전공한 아키오 모리타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있었던 둘의 만남은 오늘날 소니를 만드는 중요한 초석이 됩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개발했던 프로젝트는 전기밥솥이었습니다. 사진상으로 볼 때 지금의 밥솥들과는 비교도 안될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이지만 당시의 상황으로는 혁신적이었고 소니의 제품을 기대하게하는 원동력으로 남아있습니다.
1955
소니는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TR-55로 다시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집에서만 듣던 라디오를 휴대할 수 있도록 소형화 시키고 경량화 시켰습니다. TR-55 이후 개발된 TR-610은 더욱 작아져 지금의 휴대폰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1960
1956년 아키오 모리타는 라디오의 판매를 위해 뉴욕을 방문했는데 소니의 브랜드로는 판매하기 어려운 시장이었습니다. 이후 글로벌 시장의 확신이 있었던 소니는 1960년에 이르러 미국 뉴욕 5번가에 소니 쇼룸을 오픈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소니는 독창적인 제품들을 쏟아내어 전 세계에서 소니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특히 소비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소니만의 매력적인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소니하면 떠오르는 워크맨, 텔레비전등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1968
해외에서 소니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는 현지 사정, 현지 생활에 맞는 제품들을 출시해야 했고, 최고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야만 했습니다. ’라디오의 시대는 끝났다. 미래는 텔레비전에 있다’, 라고 말한 마사루 이부카의 말처럼 60년대 후반 세계는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빠른 변화를 맞습니다. 그 과정의 첫 번째 주자가 바로 1968년 출시된 트리니트론(Trinitron) 컬러 TV입니다. 트리니트론 컬러 TV는 소니의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으며, 소니라는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1979
소니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9년에는 역사적인 소니의 워크맨 TPS-L2가 발명되었습니다. 워크맨의 출시가 아니라 발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만큼 혁신적이었고 당시에 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혁신적인 기기는 음악을 휴대하여 들을 수 있게 만들어준 최초의 기기입니다. 덕분에 밖에서 이동하며 음악을 듣는 문화가 생겨나게 되었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스피커가 아닌 헤드폰의 역할이 시작되어 다양한 컬러를 가진 헤드폰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어폰의 발명과 패션용 헤드폰의 탄생
당시 소니의 사장인 이부카 마사루는 워크맨을 사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액세서리인 헤드폰이 워크맨 보다 더 컸기에 패키지 형태로 같이 판매 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끼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은 헤드폰을 만들라’는 이부카 마사루의 지시로 지금의 형태의 이어폰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1990년대까지 소니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1988
1980년대 말 소니는 제품의 범위를 넘어 서서, 엔터테이먼트 사업 영역 차원에서 획기적인 움직임을 보입니다. 미국의 CBS 레코드사를 1988년에, 그리고 다음 해에는 콜럼비아 영화사를 매입한 것이죠 미국 대중문화의 핵심, 가장 미국적인 부문의 최고봉들이 소니에게 점령된 것입니다. 콜럼비아를 상징하는 횃불은 든 여인에게 기모노를 입혀 놓은 모습을 표지로 한 당시의 타임지는 소니 브랜드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1990
1990년대 들어와 거대한 조류로 등장한 ‘인터넷’과 ‘MP3’에 발빠르고 대응하지 못한 소니의 브랜드 가치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 ‘소니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판단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만 소니는 1990년대 후반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출시로 ‘소니 왕국 부활’의 계기를 다시 마련했으며,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소니 브랜드’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소니의 시작은 소니에 함축된 의미 만큼이나 독창적인 제품들을 쏟아내어 전 세계에서 소니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특히나 소비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소니만의 매력적인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소니하면 떠오르는 ‘워크맨, 캠코더, 텔레비전, 그리고 홈시어터’ 등 자타가 공인하는 AV기기의 왕자로 인식될 만큼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전을 2000년대에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소니는 주력 산업인 전자기계 부문의 경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 겸 그룹 최고경영 책임자와 안도 쿠니타케(安藤国威) 사장을 동반 퇴진 시키고, 그들을 대신해 하워드 스트링거(Howard Stringer) 부회장 겸 소니 미국법인 사장과 추바치 료지(中鉢良治) 부사장을 각각 임명했습니다. 2012년 2월 1일 소니는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부사장을 신임 사장 겸 CEO로 임명했습니다. 소니 사상 첫 외국인 CEO였던 하워드 스트링거는 이사회 의장으로 추대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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